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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선생의 생가 여유당을 들러보고길건너에 있는 실학박물관을 찾았다.실학박물관 입장료는 어른이 4천원 이었다.대부분의 국립박물관이 입장료를 안받는것에 비하면 입장료는 비싼편이다.실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은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된다. 실학박물관 안내판에 의하면 실학은 궁경치용, 즉 경전을 연구해서 생활에 이바지하는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고 하고, 그런 학문 정신은 조선후기의 실학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라 유교 일반의 학문정신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실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대의 유교경전에 관한 연구를 학문의 큰 뜻으로 삼아 후대의 해석에 의존하는 학문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들째, 학문대상의 범위가 국정에 한정되지 않고, 자연현상이나 백성들의 생활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선바위 안내표지판을 보고 골목에서 산쪽으로 약 20분쯤 올라가면 국사당이 나오고, 그위에 선바위가 보인다. 올라갈때에는 몰랐는데 내려올때 유심히 관찰하니 선바위 아래 주변 집들은 대부분 절이나 암자, 무속신앙을 받드는 집들 이 모여 있는것 같다.국사당은 최영장군, 무학대사, 이태조 등과 산신, 칠성님 등 여러 무신상을 모신 신당으로 유명하다. 국사당은 일제가 남산에 있던 것을 선바위 곁으로 옮긴 뒤부터 이 바위와 국사당이 함께 무신(巫神)을 모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한다. 선바위는 아이를 갖기 원하는 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여 기자암(祈子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바위의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 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불린다. 이 바위가 태조와 ..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의 묘 경기도 기념물 제7호. 정약용 선생의 묘 안내판에 의하면 정약용 선생은 이곳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의 광주군 초부면 마현)에서 아버지 나주정씨 재원과 어머니 해남윤씨(고산 윤선도의 후손)사이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셨고, 이곳 마현(마재)마을은 선생이 태어나시고 묻히신 곳이다. 위로 이복 맏형인 약현과 동복형인 약전, 약종 그리고 누이(매형이 이승훈)가 계셨다 한다. 서울에서의 관직생활과 전라남도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제외하고는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셨고, 선생은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선생의 뒤를이어 조선시대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분으로 조선후기 개하사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고 문도공(文度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한다. 선생은 1표 2서[경세유표, 목민심서..
정약용 선생의 묘 안내판에 의하면 정약용 선생은 이곳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의 광주군 초부면 마현)에서 아버지 나주정씨 재원과 어머니 해남윤씨(고산 윤선도의 후손)사이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셨고, 이곳 마현(마재)마을은 선생이 태어나시고 묻히신 곳이다. 위로 이복 맏형인 약현과 동복형인 약전, 약종 그리고 누이(매형이 이승훈)가 계셨다 하며, 서울에서의 관직생활과 전라남도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제외하고는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셨고, 선생은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선생의 뒤를이어 조선시대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분으로 조선후기 개화사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고 문도공(文度公)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선생은 1표 2서[경세유표, 목민심서,흠흠신서]로 대표되는 500여권의 경집과 문집을 저술하셨을 뿐만 아니..
죽주산성 매산리 석불입상을 보고 다음 행선지 죽산리 오층석탑을 보러 가던중 죽주산성 안내표지가 보여 좌회전 하여 언덕위 조그만 죽주산성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원래 봄, 특히 5월에 꽃가루 알레르기로 심하게 고생을 하는데 오늘 죽주산성에서 하얀 꽃가루가 하늘에서 날리며,풀위에는 하얀 꽃가루가 눈깥이 쌓여 있었다. 아 오늘 이제 꽃가루로 고생 많이 하겠다 싶었지. 아닌게 아니라 다음날부터 눈이 더 따갑고, 기침까지 나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죽주산성에 올라가는데 조용했다.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를 않아 한적하게 둘러볼수 있었다.문화재청에 따르면 죽산은 충청북도 청주와 충주가 만나는 중부내륙의 길목이어서 일찍부터 서울로 통하는 중요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고려 고종 23년 몽고군이 죽주산..
죽산리 오층석탑 보물 제435호 죽산리 오층석탑 안내판에 의하면고려 시대의 큰 사찰이엇던 봉업사가 있엇던 이곳은, 조선시대에 폐사되었으나 발굴결과 명문이 있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 그 연혁을 대략 알 수 있었다 한다. 이곳에 있는 탑은 그 높이가 6m로 여러장의 크고 넓적한 돌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단층 기단을 두고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이 탑의 기단을 이루는 석재에는 모서리 기둥이 잘 남아 있다고 한다. 1층 탑 몸돌의 남쪽 면에는 작은 감실을 만들었는데, 그 감실을 막기위한 문을 달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한다. 지붕돌은 얇으면서 각 층마다 5단의 지붕받침이 표현되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여 편평한 느낌을 주고. 현재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며, 기단부가 둔중한 점, 1층 탑..
칠장사 당간 칠성사 당간은 칠성사 못가서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칠성사만 찾아가다가 못보고 칠성사방문후 칠성사 당간을 의식하고 내려가다가 칠성사당간을 볼 수 있었다. 당간은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둔다고 하며,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하고, 총 높이 9.75m로 15마디의 원통형 철통이 연결되어 있으며, 아래부분은 화강암으로 된 2.9m 지주 사이로 버티고 있고. 이 철당간은 조선중기에 조성된것으로 추정되며, 칠장사 외에 청주 용두사지와 공주 갑사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매우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출처 : 칠장사 당간 안내판 칠장사 당간 동영상 ※ ..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라 하며,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고려 현종 5년에는 해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해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하에서 유례되었다고 한다. 고려 우왕 9년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의 역조실록을 이곳으로 옮겼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서 중요한 역활을 차지하였다 한다. 인조 원년에는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을 위한 원찰로 삼아 크게 중수하였다 한다. 현종 15년 숙종 30년, 영조 원년, 고종 15년 등 수차례 중건을 하였으며 1970년대 이후 지속적인 보수를 통해 지금의 가람을 이루고 있다 한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