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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낙화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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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백화정충남 부소산 북쪽과 백마강변에 위치한 낙화암은 부소산 북쪽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있는 바위절벽으로, 절벽아래에는 ‘낙화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20년(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궁인들이 화를 피하지 못할 줄 알고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부여성 북쪽 구석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가서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이에 후세 사람들은 궁인을 꽃으로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으로 불렀다.낙화암 높이는 60m정도이며, 절벽 아래에 송시열의 글씨로 전해지는 ‘낙화암’ 글자가 새겨져 있다.낙화암 정상에는 백제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백화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다.백화정에 올라가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면 삼천궁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낙화암 백화..
낙화암 백화정 충남 부소산 북쪽과 백마강변에 위치한 낙화암은 부소산 북쪽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있는 바위절벽으로, 절벽아래에는 ‘낙화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20년(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궁인들이 화를 피하지 못할 줄 알고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부여성 북쪽 구석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가서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궁인을 꽃으로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으로 불렀다. 낙화암 높이는 60m정도이며, 절벽 아래에 송시열의 글씨로 전해지는 ‘낙화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낙화암 정상에는 백제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백화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다. 백화정에 올라가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면 삼천궁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
고란사고란사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98호 이다.낙화암 아래 백마강 절벽에 위치한 고란사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낙화암에서 목숨을 바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사찰의 유래는 암벽에 자라고 있는 고란초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고란약수를 즐겨 마신 백제 임금은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렸다고 한다. 고란사 약수는 한번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이번에도 약수를 마시고 왔는데 얼마나 젊어지려나.. 고란사 동영상
고란사 고란사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98호 이다. 낙화암 아래 백마강 절벽에 위치한 고란사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낙화암에서 목숨을 바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찰의 유래는 암벽에 자라고 있는 고란초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고란약수를 즐겨 마신 백제 임금은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렸다고 한다. 고란사 약수는 한번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번에도 약수를 마시고 왔는데 얼마나 젊어지려나.. 고란사 동영상
낙화암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 즉 여자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낙화암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 즉 여자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